촛불이 한창이던 5~6월, 20대 혹은 대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촛불에 덜 나오고 있다면서 이들이 보수화되었다는 비판이 있었다.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에 이명박을 찍었을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촛불에 나오는 듯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세상은 어쩔 수 없다는 냉소와 무기력감에 젖어있다는 것이다.
당시의 한 블로거는 "난 지금의 20대를 보면 대한민국의 희망이 없다고 느껴진다"라고까지 했다.
오늘 우연히 오마이뉴스에서 읽은
"기말 시험에 MB 라디오 소감을 물었습니다"은 최근 대학교 기말고사에 이명박의 라디오 소감 내용을 정리하고, 그에 대한 평가를 쓰라는 문제를 제출했던 한 강사의 경험을 소개하고 있다. 꼭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글을 읽어보면 이명박이 말한
- 청년 개인의 도전정신을 키우라는 것,
- 직장에 대한 눈높이를 낮추라는 것,
- 현 경제위기에서 정부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것
.. 에 대한 논리적 반박이 주된 내용임을 알 수 있다. 이 세 논리들은 경제위기 때마다 청년들에게 가해졌던 사회의 압력이기도 하다.
20대들은 10대나 386과는 다른 특징을 지닌다. 이들은 10대보다는 상대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기회를 누리고 있고 당장 교실에서 숨막히게 억눌려있지도 않다. 또한 한나라당 집권에 대한 불안감이 매우 컸던 386 세대(30대 후반 이상)과 달리 대게는 김대중 정부 이후의 정부를 경험했다. 뿐만 아니라 개인의 능력을 개발하면 자신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을 여타의 세대보다 강하게 품고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행동에 나서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던 10대나 386들과는 달리 우려스러운 눈으로 쇠고기 수입, 의료민영화, 대운하 등을 바라보면서도 행동에 나서는 것에 부담을 느꼈던 듯 하다. "광우병으로 죽는 것보다 취업 못해 죽는 것이 더 두렵다"는 문구는 이를 잘 보여준다. 물론 모든 20대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이른바 '고대녀' 또한 20대였을 뿐만 아니라, 많은 대학생들이 학생회를 중심으로, 또는 인터넷 까페의 일부로 촛불에 동참했었다. 다만 20대 전체로 봤을 때 10대나 386과는 달랐다는 것이다.
20대가 보수화되었다고 결론짓는 것은 진실의 일면만을 보는 것이다.
2007년에 <한겨레>와 《말》지가 각각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대학생들이 한편에서는 경쟁과 성장우선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면서도 거의 절반이 여러 사회 현안에서 일관되게 진보 입장을 취했다. 또한 40%는 스스로를 "진보"로 규정하였다. 이들은 보수화되었다기 보단 사회전체의 모순된 의식을 여타의 세대보다 더 극적으로 반영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말》지는 설문결과를 바탕으로 이들의 모순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 "나는 진보적이고, 이명박을 지지하며, 미국 중심의 패권적 질서에 대해서는 심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만 한미FTA는 비준돼야 [한다.]"
서두에 소개한 기사를 읽어보면, 최근의 경제위기 때문에 취업시장이 얼어붙고 정부가 노동조건 악화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하자, 20대가 갖고 있던 기대가 분노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는 듯 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어왔던 최소한의 것이 무너졌을 때 의식이 급진화한다는 패턴을 따를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청소년기에 2002년 미선이 효순이 투쟁을 겪었던 세대이기도 한데, 당시에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계기는 미선이 효순이의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해당 미군에 대한 무죄판결이었다는 것도 이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일단 투쟁이 촉발되자 운동의 역동성 속에서 요구사항이 정치적으로 발전하여, 단지 해당 미군의 처벌만이 아니라 소파협정 등 불평등한 한미관계 일반에 대한 문제제기로까지 나아갔다. (당시 대선 후보였던 노무현은 이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반미면 어떠냐"라고 립서비스를 했어야 했다.)
이러한 특징을 갖는 20대, 특히 학생들은 역사적으로, 그리고 세계적으로 큰 투쟁의 도화선 역할을 한 경우가 많다. 한국의 87년 6월항쟁, 프랑스 68혁명, 미국의 반전운동, 중동 여러 나라에서 제국주의에 맞선 이슬람주의 운동들에서 학생들은 선봉에 나섰었다. 특히 대학은 일상적으로는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역할을 하지만, 경제위기나 전쟁 등으로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위축될 경우 이데올로기적 혼란의 중심지가 되기도 한다.
촛불 시즌2가 시작된다면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예측하기 위해 최근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해보는데, 경제위기 상황인만큼 시즌2에서 20대가 전편보다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조심스러운 기대를 가져본다. 물론 이는 자동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얼마나 좌파들이 노력하느냐에 따라 달려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선 "20대는 보수화되었다"라는, 겉만 보고 실체는 보지 못하는 오류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겠다.
추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