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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잔인함 앞에, 760명은 얼마나 작은 숫자인가

내일이 시험이라 인터넷을 거의 못했는데 오늘 한 동지한테 팔레스타인에서 벌써 사망자가 760명이 넘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아군의 미사일에 죽었다는 이스라엘 군인 7명은 제외한 숫자)

760명.

"2006년 이스라엘은 레바논에서 패배했다"라고 말할 때, 승리했다는 그 레바논에서는 1200명이 죽었다고 한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수렁에 빠져있다"라고 얘기할 때, 이라크 민간인이 아니라 미군 병사 사망자가 4000명을 넘었다(2008년 기준). 4000명의 미군이 죽는 동안 사망한 이라크인들은 몇 백 배가 되고도 남을 것이다.

정말이지 제국주의의 잔악무도함은 760명이라는 숫자가 작다고 느껴지도록 만든다. 일체의 저항이 무기력하다고 느낄만하다.

그러나 이런 무기력감에 젖어서는 오늘 하마스가 휴전안을 "팔레스타인인들의 이해나 요구가 고려되지 않았다"며 거부한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오늘날 팔레스타인인들이 하마스를 지지하게 된 데에는, 이른바 '평화협정'에 매달리며 이스라엘의 만행을 방조하는 것은 물론 자국민의 저항을 억압하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지지를 받는 정당인 파타에게 실망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평화협정'이라는 것이 말만 그럴듯 하지, 실제로는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두둔하는 국제정상들의 농간에 놀아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1947년의 유엔 분할안이 사실상 시온주의자들의 강탈 계획이 된 것과 꼭 마찬가지로 (파타의) 1990년대의 평화 협상은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을 병합하기 위한 근거가 된 것이다. (《이스라엘, 제국주의, 팔레스타인 항쟁》,p22)

팔레스타인인들은 평화를 원하지만 '평화 협상'은 원하지 않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무장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단지 하마스만이 아니라, 저항을 "선택"한 팔레스타인 민중들로부터 저항의 구심점을 빼앗기 위한 것이다. 애초 이스라엘이 이번 전쟁을 도발한 이유가 바로 중동에서 위기를 겪고 있는 제국주의를 구하기 위해 팔레스타인들의 저항을 본보기로 분쇄하려는 것임을 감안하면, 이집트 등이 제시하는 '휴전안'이야말로 이스라엘이 전쟁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돕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대로, 비타협적인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민중의 저항을 꺽지 못하고 이스라엘이 물러나게 된다면, 마치 2006년 레바논에서 그랬듯이, 이스라엘은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패배하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휴전안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없애지도 못한다. 1987년에 시작된 인티파다가 이스라엘 건국 이후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 성장한 '점령 세대'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점은 이를 보여준다.

'점령 세대'는 이스라엘의 지배를 받으면서 자라났다. 1987년이 되자 그들이 가자 주민의 다수를 차지했다. 그 지역에서 25~34세 청년들의 수가 10년 사이에 두 배로 늘었고, 14세 이하 청소년이 모든 지역 주민의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 이들 젊은층의 다수는 그들의 부모를 물러서게 만들었던 이스라엘 당국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시온주의 치하의 억압적인 생활에 단련되고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는 샤비브─'녀석들' 또는 '젊은이들'─는 이스라엘 군대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어떤 중년 여성의 말마따나, "우리 세대는 실패했다. 그런데 바로 자식들이 우리에게 어떻게 싸우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인티파다-시온주의, 미국과 팔레스타인 저항』, p23)

이처럼 휴전 이후에도, 팔레스타인은 사람이 살만한 지역으로 남지 않을 것이고(파타의 서안지구는 과연 사람이 살만한 곳인가?), 팔레스타인에서는 자생적인 저항이 새로운 세대와 함께 끊임없이 등장할 것이다.

2000년 10월 29일, 2차 인티파타 중 탱크를 향해 돌을 던지는 13세의 소년.

열흘 후 소년은 다른 곳에서 돌을 던지다 이스라엘 군인이 쏜 총에

목을 맞아 숨진다. (출처: 위키피디아)


설령 민중의 지지를 받는 하마스가 회복불가능한 정도까지 타격을 받게 되거나 제국주의 압력에 굴복하게 된다 하더라도, 팔레스타인에는 더 급진적인 저항세력이 등장할 것이다. 마치 처음엔 "팔레스타인 저항의 상징"이었던 파타가 제국주의에 순응하기 시작하자, 팔레스타인 민중들이 새로이 하마스를 선택했듯이 말이다. 이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독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끊임없는 전쟁을 통해 인근 아랍 국가에게는 위협을 가하고, 서방의 제국주의 모국(母國)에게는 자신의 '효용'을 입증해보이려 하기 때문이다. 평화를 원하지 않는 것은 하마스가 아니라 바로 이스라엘이다.

"휴전을 지지하지만 '정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팔레스타인 블로거의 글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고, 오늘 하마스가 휴전을 거부한 것을 중동의 평화를 원하는 모든 사람이 지지해야 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비록 그 블로거가 지지하는 2국가 방안이나(반론), 유엔 평화유지군 주둔을 주장하는 것(반론)에 나는 이견이 있지만 말이다)

760명. 분명 작은 숫자가 아니다. 대구 지하철 참사 사망자의 4배에 이르고, 삼풍백화점 붕괴로 죽은 사람(501명)보다도 훨씬 더 큰 숫자이다. 가장 말도 안되었던 사고들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말이 안되는 이유로 죽은 것이다. 장차 이 숫자가 더 커질 것이라는 점이 더 심각하다.

지금 팔레스타인에 필요한 것은 동정이 아니라 연대이다. 동정적인 시선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는데, 팔레스타인이 단순히 비참하다고만 말하기엔 그곳에서 저항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지 아름답다고만 하기엔 현실이 너무나 잔인하다. 바로 그 때문에 전세계적인 반시온주의, 반제국주의 운동의 성장이 시급한 것이다.


집회공지
  • 1월 10일(토) 3시 보신각, 1월 10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학살 중단 촉구 긴급행동 ─ 학살을 중단하라
  • 1월 13일(화) 7시, 이스라엘 대사관 앞 2번째 촛불집회 (청계광장 베니건스 건물 앞)


** 애초에 썼던 제목이 760명이라는 숫자를 작다고만 강조하는 듯해서 지금의 제목으로 바꾸었습니다. 트랙백을 보낸 오마이뉴스에서는 제목을 수정할 수가 없군요. 제목이 바뀌었다는 점 참고 바랍니다.

by dakiller6 | 2009/01/10 01:33 | 트랙백 | 덧글(0)

박노자의 "미 제국: 패권 몰락의 속도"가 암울한 이유.

박노자의 글 "미 제국: 패권 몰락의 속도"는 경제 위기 속에서 미국의 패권이 흔들리고 있지만 이것이 자동적으로 중국이나 그밖의 나라들의 부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경제적으로 열세인 미국이, 세계 다른 나라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우월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지정학적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매우 옳은 지적이다. 경제위기 속에 각국 정부가 "단결 협력"하고 있다는 식으로 주요 언론들이 보도하는 이 시기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노자의 글은 어딘가 암울하다. 쉽게 동의가 안된다. "이 세계에서 야만의 세력에 맞설 수 있는 '우리 편'이란 없다"라는 대목을 읽을 때에는 묵시론적이라는 느낌까지 든다.

박노자는 이라크와 아프간믄 물론 동유럽 일부까지 포함하는 넓은 지역에서 이러저러한 국가들간 세력다툼으로 "학살과 절규의 역사"가 향후 몇십년간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가 말하는 야만의 역사가 일어날 개연성이 작지 않다고 나도 생각한다. 그러나 개연성이 곧 실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를 분석하려는 입장에서는 난무하는 불확실성의 요인 중에서 가장 주목해야할 것들을 지목해내야 할 것이다.

박노자는 옳게도 현실을 좌우할 하나의 요인을 지목한다. 바로 각 국가들의 힘이다. 미국과 중국-러시아 사이의 갈등이 일어날 구체적 맥락을 역사적 사례와 함께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난다. 그래서 암울하다.

국경으로 나뉘어진 국가들만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한다고 간주하기 때문에 그는 "(진보적인) 작은 서클, 군소 정당"이 현실에서 미약하며, "미국의 패권에 가장 센 펀치를 날리는 것이.. 이라크 저항세력과 탈레반"이라고 말한다. 전자가 국경 내에서 선거로 정부를 바꾸겠다는 것이라면, 후자는 국경 밖에서 총으로 패권을 거꾸러뜨리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가 항상 각국의 "국익" 논리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작은 서클과 군소 정당은 자체의 능력만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베트남전을 패배로 이끈 것은 호치민의 무장투쟁이었다는 것은 사실에 대한 오도이기도 하다. 베트남전뿐만 아니라 이라크전에서 미국을 수렁에 빠뜨린 것은 호치민이나 저항세력이 아니었고(물론 그들의 영웅적 투쟁은 저항의 구심점을 제공했다), 존슨과 부시를 낭떠러지로 몰아부친 것은 야당의 대국민 선전능력 덕분이 아니었다. 이 둘을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전세계적 반전운동이었다.


2003년 2월 15일 하루동안 전세계적 60개 국가에서 6백만~1천만명이
거리로 뛰쳐나와서 이라크전 반대를 외쳤다


베트남전은 미국이 총알과 폭탄이 부족해서 진 것이 아니라, 전쟁에 대한 정치적 명분을 완전히 잃었기 때문에 진 것이었다. 자유세계의 모두를 위한다는 거짓말이 더이상 통하지 않은 것이다. 이라크전은 대량학살무기, 불량독재국가 그리고 석유에 대한 필요성이라는 순서로 제시된 모든 "국익"을 날려버린 반전운동 때문에 수렁에 빠진 것이다.

김선일씨 피랍 직후 전투병 파병을 주장하는 꼴통들에게 솔깃해하던 일부 한국인들의 정서에서 볼 수 있듯이, 자국민의 사상자가 많다는 것이 전쟁에 반대하는 정서로 자동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중간선거에서 부시를 참패시킨 미국의 반전운동 역시, 단지 자국 군인의 사상자가 많아서가 아니라 국제 반전운동의 일부로 움직인다.

전쟁 초기의 애국광풍이 지나가고 나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죽이고 죽여야하는가 답을 구하게 된다. 이 때 답을 제공하는 쪽이 전쟁광이라면 더 유혈낭자한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그러나 만약 개전국 양쪽 모두, 또는 제국주의 침략 국가 내에서 반전운동이 강력해서 사람들에게 "전쟁은 아니다!"라는 동의를 이끌어내게 된다면 전쟁은 끝나는 것이다.

요컨대, 경제위기로 인해 흔들리는 패권을 보면서, 각국 정부들은 자국민들을 죽음으로 내몰아서라도 한몫 챙기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각국에서 자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정부의 선동에 속지않고 단호하게 전쟁에 반대한다면 이러한 정부의 시도는 실패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뉴욕타임즈는 국제 반전운동이 "두번째 슈퍼파워"라고 지적한 바 있다.

말로만 으르렁거리다 끝날 것인지, 아니면 전쟁이 수십년간 지속될 지는 정해져있지 않다. 마치 기업이 노동자 없으면 안되듯이 수십년간 지속될 전쟁은 전장에서 대신 죽을 군인과 물자를 제공할 노동자들 없이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베트남전 이후 "베트남 증후군"을 겪으며 전면적인 군사력 사용에 더 큰 부담을 느껴야 했다.

영국에서 200만명이 넘는 반전운동을 건설한 전쟁저지연합의 존 리즈는 그의 책 "새로운 제국주의와 저항"에서 현대 세계가 "세계 경제", "국민국가" 그리고 "(국경에 무관한) 노동계급"이라는 세가지 힘에 의해 움직인다고 설명한 바 있다. 박노자의 글은 세 가지 중 2가지만 지목할뿐 세번째 것은 빼놓고 쓰여졌기 때문에 읽는 이로 하여금 무력감을 느끼게 한다.

추천 읽을거리
기사: 체제의 실패가 낳은 경제 위기와 전쟁(저항의 촛불 8호, 2008-10-09)
기사:다시 듣는 맑시즘 2007 ③ - 현대 제국주의의 정치와 경제(맞불 62호, 2007-10-24)
책: 새로운 제국주의와 저항 (존 리즈, 책갈피, 2008)

by dakiller6 | 2008/10/22 02:00 | 트랙백 | 핑백(2)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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