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22일
박노자의 "미 제국: 패권 몰락의 속도"가 암울한 이유.
박노자의 글 "미 제국: 패권 몰락의 속도"는 경제 위기 속에서 미국의 패권이 흔들리고 있지만 이것이 자동적으로 중국이나 그밖의 나라들의 부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경제적으로 열세인 미국이, 세계 다른 나라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우월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지정학적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매우 옳은 지적이다. 경제위기 속에 각국 정부가 "단결 협력"하고 있다는 식으로 주요 언론들이 보도하는 이 시기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노자의 글은 어딘가 암울하다. 쉽게 동의가 안된다. "이 세계에서 야만의 세력에 맞설 수 있는 '우리 편'이란 없다"라는 대목을 읽을 때에는 묵시론적이라는 느낌까지 든다.
박노자는 이라크와 아프간믄 물론 동유럽 일부까지 포함하는 넓은 지역에서 이러저러한 국가들간 세력다툼으로 "학살과 절규의 역사"가 향후 몇십년간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가 말하는 야만의 역사가 일어날 개연성이 작지 않다고 나도 생각한다. 그러나 개연성이 곧 실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를 분석하려는 입장에서는 난무하는 불확실성의 요인 중에서 가장 주목해야할 것들을 지목해내야 할 것이다.
박노자는 옳게도 현실을 좌우할 하나의 요인을 지목한다. 바로 각 국가들의 힘이다. 미국과 중국-러시아 사이의 갈등이 일어날 구체적 맥락을 역사적 사례와 함께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난다. 그래서 암울하다.
국경으로 나뉘어진 국가들만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한다고 간주하기 때문에 그는 "(진보적인) 작은 서클, 군소 정당"이 현실에서 미약하며, "미국의 패권에 가장 센 펀치를 날리는 것이.. 이라크 저항세력과 탈레반"이라고 말한다. 전자가 국경 내에서 선거로 정부를 바꾸겠다는 것이라면, 후자는 국경 밖에서 총으로 패권을 거꾸러뜨리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가 항상 각국의 "국익" 논리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작은 서클과 군소 정당은 자체의 능력만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베트남전을 패배로 이끈 것은 호치민의 무장투쟁이었다는 것은 사실에 대한 오도이기도 하다. 베트남전뿐만 아니라 이라크전에서 미국을 수렁에 빠뜨린 것은 호치민이나 저항세력이 아니었고(물론 그들의 영웅적 투쟁은 저항의 구심점을 제공했다), 존슨과 부시를 낭떠러지로 몰아부친 것은 야당의 대국민 선전능력 덕분이 아니었다. 이 둘을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전세계적 반전운동이었다.

2003년 2월 15일 하루동안 전세계적 60개 국가에서 6백만~1천만명이
거리로 뛰쳐나와서 이라크전 반대를 외쳤다
베트남전은 미국이 총알과 폭탄이 부족해서 진 것이 아니라, 전쟁에 대한 정치적 명분을 완전히 잃었기 때문에 진 것이었다. 자유세계의 모두를 위한다는 거짓말이 더이상 통하지 않은 것이다. 이라크전은 대량학살무기, 불량독재국가 그리고 석유에 대한 필요성이라는 순서로 제시된 모든 "국익"을 날려버린 반전운동 때문에 수렁에 빠진 것이다.
김선일씨 피랍 직후 전투병 파병을 주장하는 꼴통들에게 솔깃해하던 일부 한국인들의 정서에서 볼 수 있듯이, 자국민의 사상자가 많다는 것이 전쟁에 반대하는 정서로 자동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중간선거에서 부시를 참패시킨 미국의 반전운동 역시, 단지 자국 군인의 사상자가 많아서가 아니라 국제 반전운동의 일부로 움직인다.
전쟁 초기의 애국광풍이 지나가고 나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죽이고 죽여야하는가 답을 구하게 된다. 이 때 답을 제공하는 쪽이 전쟁광이라면 더 유혈낭자한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그러나 만약 개전국 양쪽 모두, 또는 제국주의 침략 국가 내에서 반전운동이 강력해서 사람들에게 "전쟁은 아니다!"라는 동의를 이끌어내게 된다면 전쟁은 끝나는 것이다.
요컨대, 경제위기로 인해 흔들리는 패권을 보면서, 각국 정부들은 자국민들을 죽음으로 내몰아서라도 한몫 챙기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각국에서 자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정부의 선동에 속지않고 단호하게 전쟁에 반대한다면 이러한 정부의 시도는 실패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뉴욕타임즈는 국제 반전운동이 "두번째 슈퍼파워"라고 지적한 바 있다.
말로만 으르렁거리다 끝날 것인지, 아니면 전쟁이 수십년간 지속될 지는 정해져있지 않다. 마치 기업이 노동자 없으면 안되듯이 수십년간 지속될 전쟁은 전장에서 대신 죽을 군인과 물자를 제공할 노동자들 없이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베트남전 이후 "베트남 증후군"을 겪으며 전면적인 군사력 사용에 더 큰 부담을 느껴야 했다.
영국에서 200만명이 넘는 반전운동을 건설한 전쟁저지연합의 존 리즈는 그의 책 "새로운 제국주의와 저항"에서 현대 세계가 "세계 경제", "국민국가" 그리고 "(국경에 무관한) 노동계급"이라는 세가지 힘에 의해 움직인다고 설명한 바 있다. 박노자의 글은 세 가지 중 2가지만 지목할뿐 세번째 것은 빼놓고 쓰여졌기 때문에 읽는 이로 하여금 무력감을 느끼게 한다.
추천 읽을거리
기사: 체제의 실패가 낳은 경제 위기와 전쟁(저항의 촛불 8호, 2008-10-09)
기사:다시 듣는 맑시즘 2007 ③ - 현대 제국주의의 정치와 경제(맞불 62호, 2007-10-24)
책: 새로운 제국주의와 저항 (존 리즈, 책갈피, 2008)
매우 옳은 지적이다. 경제위기 속에 각국 정부가 "단결 협력"하고 있다는 식으로 주요 언론들이 보도하는 이 시기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노자의 글은 어딘가 암울하다. 쉽게 동의가 안된다. "이 세계에서 야만의 세력에 맞설 수 있는 '우리 편'이란 없다"라는 대목을 읽을 때에는 묵시론적이라는 느낌까지 든다.
박노자는 이라크와 아프간믄 물론 동유럽 일부까지 포함하는 넓은 지역에서 이러저러한 국가들간 세력다툼으로 "학살과 절규의 역사"가 향후 몇십년간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가 말하는 야만의 역사가 일어날 개연성이 작지 않다고 나도 생각한다. 그러나 개연성이 곧 실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를 분석하려는 입장에서는 난무하는 불확실성의 요인 중에서 가장 주목해야할 것들을 지목해내야 할 것이다.
박노자는 옳게도 현실을 좌우할 하나의 요인을 지목한다. 바로 각 국가들의 힘이다. 미국과 중국-러시아 사이의 갈등이 일어날 구체적 맥락을 역사적 사례와 함께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난다. 그래서 암울하다.
국경으로 나뉘어진 국가들만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한다고 간주하기 때문에 그는 "(진보적인) 작은 서클, 군소 정당"이 현실에서 미약하며, "미국의 패권에 가장 센 펀치를 날리는 것이.. 이라크 저항세력과 탈레반"이라고 말한다. 전자가 국경 내에서 선거로 정부를 바꾸겠다는 것이라면, 후자는 국경 밖에서 총으로 패권을 거꾸러뜨리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가 항상 각국의 "국익" 논리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작은 서클과 군소 정당은 자체의 능력만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베트남전을 패배로 이끈 것은 호치민의 무장투쟁이었다는 것은 사실에 대한 오도이기도 하다. 베트남전뿐만 아니라 이라크전에서 미국을 수렁에 빠뜨린 것은 호치민이나 저항세력이 아니었고(물론 그들의 영웅적 투쟁은 저항의 구심점을 제공했다), 존슨과 부시를 낭떠러지로 몰아부친 것은 야당의 대국민 선전능력 덕분이 아니었다. 이 둘을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전세계적 반전운동이었다.
2003년 2월 15일 하루동안 전세계적 60개 국가에서 6백만~1천만명이
거리로 뛰쳐나와서 이라크전 반대를 외쳤다
베트남전은 미국이 총알과 폭탄이 부족해서 진 것이 아니라, 전쟁에 대한 정치적 명분을 완전히 잃었기 때문에 진 것이었다. 자유세계의 모두를 위한다는 거짓말이 더이상 통하지 않은 것이다. 이라크전은 대량학살무기, 불량독재국가 그리고 석유에 대한 필요성이라는 순서로 제시된 모든 "국익"을 날려버린 반전운동 때문에 수렁에 빠진 것이다.
김선일씨 피랍 직후 전투병 파병을 주장하는 꼴통들에게 솔깃해하던 일부 한국인들의 정서에서 볼 수 있듯이, 자국민의 사상자가 많다는 것이 전쟁에 반대하는 정서로 자동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중간선거에서 부시를 참패시킨 미국의 반전운동 역시, 단지 자국 군인의 사상자가 많아서가 아니라 국제 반전운동의 일부로 움직인다.
전쟁 초기의 애국광풍이 지나가고 나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죽이고 죽여야하는가 답을 구하게 된다. 이 때 답을 제공하는 쪽이 전쟁광이라면 더 유혈낭자한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그러나 만약 개전국 양쪽 모두, 또는 제국주의 침략 국가 내에서 반전운동이 강력해서 사람들에게 "전쟁은 아니다!"라는 동의를 이끌어내게 된다면 전쟁은 끝나는 것이다.
요컨대, 경제위기로 인해 흔들리는 패권을 보면서, 각국 정부들은 자국민들을 죽음으로 내몰아서라도 한몫 챙기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각국에서 자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정부의 선동에 속지않고 단호하게 전쟁에 반대한다면 이러한 정부의 시도는 실패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뉴욕타임즈는 국제 반전운동이 "두번째 슈퍼파워"라고 지적한 바 있다.
말로만 으르렁거리다 끝날 것인지, 아니면 전쟁이 수십년간 지속될 지는 정해져있지 않다. 마치 기업이 노동자 없으면 안되듯이 수십년간 지속될 전쟁은 전장에서 대신 죽을 군인과 물자를 제공할 노동자들 없이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베트남전 이후 "베트남 증후군"을 겪으며 전면적인 군사력 사용에 더 큰 부담을 느껴야 했다.
영국에서 200만명이 넘는 반전운동을 건설한 전쟁저지연합의 존 리즈는 그의 책 "새로운 제국주의와 저항"에서 현대 세계가 "세계 경제", "국민국가" 그리고 "(국경에 무관한) 노동계급"이라는 세가지 힘에 의해 움직인다고 설명한 바 있다. 박노자의 글은 세 가지 중 2가지만 지목할뿐 세번째 것은 빼놓고 쓰여졌기 때문에 읽는 이로 하여금 무력감을 느끼게 한다.
추천 읽을거리
기사: 체제의 실패가 낳은 경제 위기와 전쟁(저항의 촛불 8호, 2008-10-09)
기사:다시 듣는 맑시즘 2007 ③ - 현대 제국주의의 정치와 경제(맞불 62호, 2007-10-24)
책: 새로운 제국주의와 저항 (존 리즈, 책갈피,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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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제국 패권의 위기 및 몰락 과정에서 수많은 국지전들이 발발될 가능성이 높다는 요지의 글을 쓰고 나니 이에 대한 한 반론이 들어왔습니다 (http://dakiller6.egloos.com/989841). 반론의 요지는, 패권 위기 과정에서 전쟁이 발발될 수 있어도 주요 핵심부 (구미 지역) 국가들의 민중의 반전 운동이 크게 일어나 ... more
... --------------------- 박노자씨는 미 제국: 패권 몰락의 속도라는 글에서 세계 정세를 돌아보았다.상당히 마땅한 글이지만 dakiller6님의 박노자의 "미 제국: 패권 몰락의 속도"가 암울한 이유에서 지적했듯 서구열강의 국민들의 반전운동에 대해서 너무 비관적인 생각이 아닌가 했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들은 이미 그들에 의해 논의되었던지라 더 ... more
제목: 서구 민중에 대한 낭만적 꿈을 버려주시기 바랍니다.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167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