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김규항씨의 "진보란 무엇인가?"에 대해

동생이 글을 하나 보내왔다. Delicious라는 social bookmarking을 알게된 이후 종종 글을 보내오는데 내가 "Firefox 종료할 때, 개인 정보 모두 삭제"를 설정해놔서 오늘에야 읽었다.

"이제 행복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라고 시작하기 전까지 김규항씨의 글은 대체로 공감할 수 있었다. 사회는 실제로 계급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노동자나 농민이 "노동자 권리"나 "농민의 이해"를 소리 높여 외칠 수 있지만, 부자나 지배계급은 그럴 수 없기 때문에 "국익"이란 이름으로 포장해서 다수를 속인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1987년 직선제로 상징되는 한국사회의 민주화는 이러한 국익논리에 포섭되어, 실제로는 다수의 기대를 배신하는 신자유주의로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87년의 성과를 신자유주의가 다 말아먹었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은 좀 비약이라고 생각이 든다. 이에 대해서는 내가 길게 쓰기 보단, 1987년 6월항쟁과 2008년 촛불항쟁, 무엇이 달라졌나(저항의 촛불 4호)를 읽어볼 것을 추천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그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자신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없었다는 김규항씨의 주장에 대한 것이다. 앞으로 나는 주되게 대중의 의식변화에 대해서 논박할 것이다. 김규항씨는 "지난 10년동안 한국사회의 성원들을 가만히 보시면 거의 대부분 자본의 가치관으로 변질"되었다고 한탄한다. 다음 문단은 글의 나머지 내용을 모두 축약한 듯 해서 통째로 옮겨왔다.

지금 모든 게 이명박 때문인 것처럼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이명박, 작은 이건희인 우리에게 성찰없는 분노는카타르시스일뿐이죠.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게 되어 있는 거니까.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이명박씨는 군사쿠테타로 박정희나 전두환처럼 군사쿠데타로 억지로 집권한 사람이 아니라, 이른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선거에 의해서압도적인 표차로 선출된 대통령이라는 것입니다. 이명박을 비판하고 욕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에 대한 비판과 욕이기도 해야하다는 것을기억을 해야 된다.  이명박이 생각하는 행복, 이건희가 생각하는 행복과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이 다를 게 없다면 어떤 분노나싸움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되새겨보는 시간을 갖자고 제안하는 것으로 글을 끝마친다. 물론 자성하고 성찰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나도 그런 시간을 갖기 위해 의식적으로 일기장을 관리한다. 그러나 김규항씨는 의도했건 아니건, 이명박에 대해 정당하게 분노하는 다수에게 "너나 잘해"라는 식으로 찬물을 끼얹는다는 인상을 준다. 정당한 분노를 고무하면서도 촛불 시즌2를 준비하기 위해 차분하게 평가를 내리려면, 카타르시스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접근보다는 그 이상이 필요하다.

그는 이명박의 당선을,

그가 대통령이 되면 뭔가 짭짤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에 그를 뽑은 것이지요. 그래놓고선 우리 새끼 광우병 고기 먹이는구나하니까 다들 들고 일어나는 건데 이걸 민주화운동에 비견하거나 위대한 항쟁이라고 말하는 건 사실 민망한 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의 당선이 "뭔가 짭짤할 것"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되었다기 보단, 김규항씨가 비판한 지난 10년간 진행된 신자유주의의 대한 환멸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특히나 입바른척하며 비정규직 확대, 한미FTA 강요, 이라크-아프간 파병이 경제 때문에 어쩔수 없었으며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고 말한 '바보 노무현'에 대해 대중이 가진 환멸을 충분히 고려해야한다. 이를 고려했을 때, 같은 현상을 두고서 <맞불>에선 전혀 다르게 서술하였다.

평범한 대중은, 자신이 신자유주의자이긴 하지만 ‘좌파’(“좌파 신자유주의자”)라는 둥 말로만 진보적인 체하고 실천은 보수반동적이었던 노무현 계승 세력보다는 중앙 1차로에 버스 전용차로를 만들고 청계천을 복원시킨 추진력을 보인 “불도저” 이명박을선택했다. ‘그런 추진력으로 경제 정책을 펴면 경제가 나아질 텐데, 비리면 어떠냐. 도덕성이 밥 먹여주냐’는 듯한 태도다.도대체 노정권에 대한 냉소가 얼마나 크면 저러랴 싶다. (맞불 70호, 2007년 12월 21일)

이러한 연장선 상에서 이명박의 당선을 바라보면, 촛불운동이 단지 "우리 새끼 광우병 고기 먹이는구나"가 아니라 노무현이 5년간 추진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이명박이 몇달안에 밀어부치려는 것에 대한 반발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실제로 촛불집회에는 첫날부터 광우병 이외에도 경쟁위주 교육과 민영화 그리고 대운하에 반대하는 구호들이 등장했었다. 조선일보가 "촛불 변질"운운 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촛불운동은 또한 민주주의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국민의 80%가 반대하는 쇠고기 수입을 강행하고, 말로는 대운하 없다고 해놓고선 내부 계획 문서가 폭로되고, 공기업 민영화는 안 하겠다고 했었지만 바로 몇 달뒤에 자기 친척에게 인천공항을 넘기려는 것을 보며 이 정부가 국민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촛불집회에서 유행한 "헌법 제1조"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명박이 밀어부치려는 계획을 멈추게 만드는 효과를 곳곳에서 일으켰다. 따라서 촛불운동이 민주화 운동이며 위대한 항쟁이라는 사실은 전혀 민망한 일이 아니다.

한국 정치의 좌우 스펙트럼에 대해서는 잘 설명한 김규항씨가 촛불 운동에 대해서는 이처럼 비관적이고 안으로만 움츠려드는 평가를 내린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가 대중의 의식 변화를 지나치게 낮게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빠른 시일안에 급진적인 주장을 하는 대중을 보며 "과연 자기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나 알고 외치는 것일까"를 고민하는 모습이랄까.

분명 대중의 의식은 불균등하다. 정치적 일관성을 유지하려고 일상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의료민영화에 반대하면서도 차값 내려간다는 말에 한미FTA를 찬성하거나, 이명박의 민영화 정책을 우려하면서도 이에 맞서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비난하기 일쑤일 것이다. (물론 파업에 대해서는 촛불을 통해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이러한 불균등한 의식이 경제위기와 맞물리면 가연성(flammable)과 휘발성(volatile)을 모두 갖고 있는 무엇으로 나타난다. 특히, 이러한 의식의 가연성은 노동현장에서 자주 보이는 것들이다. 작년에 홈에버 상암점을 점거했던 바로 그 아주머니들이 점거 석달전까지만해도 노조 가입 권유에 설레발쳤다는 얘기는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촛불운동이 보여준 거대한 폭발력 역시 이러한 가연성의 극단적 사례이다. 반면에, 6월 10일 백만명이 모인 이후 운동의 지도부가 아무것도 내놓지 못한채 시간을 끄는 동안 차차 촛불이 줄어든 것은 그 반대편인 휘발성을 보여준 것이었다.

그러나 촛불운동은 서로 다른 운동들이 연결될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대중의 의식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수학으로 치자면, 운동은 수직선이 아니라 좌표평면 같아서 1+1이 2가 아니라 (0,0)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를 이용해 지배계급은 운동을 분열시키려고 한다. 촛불운동은 이러한 계획의 일환이었던 합법/비합법 논쟁이나 "변질" 논쟁을 극복하면서 나아갔을 뿐만 아니라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미처 몰랐던 다양한 쟁점에 대해 알게되는 계기를 제공했다. 사람들이 운수노조 파업에 열광한 이유는 그들이 좌파의 선동에 놀아나서가 아니라 노동자 파업의 힘을 기대했기 때문이었고, 또다른 예시로 이명박의 민영화 추진에 대한 반대 여론은 촛불집회를 거치면서 더 높아졌다.

좌파는, 이러한 양면을 모두 갖고 있는 대중의 분노가 실체를 가질 수 있도록 정치적 구심점을 제공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네트워크를 조직해야 할 것이다. 옆에 비껴서서 의구심을 갖고 "제대로 알고나 있는 것일까"라고 바라보는 것 이상으로 말이다.

덧글

  • 思惟 2008/09/29 22:20 # 답글

    이미 사회운동을 하거나 했던 사람들이 촛불에서 받은 것과는 다른 충격과 깨달음을, 저같은 대학 4년 내내 운동에 관심없고 파업을 싫어하고 정치에 회의적인 '일반인들'이 받았다는 것을 정확히 이해하는 좌파분들은 드문 것 같습니다.

    사람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라는 아마도 경험에서 나왔을 전제가 촛불이라는 강하고 저항감없는 ( '일반인'들에게 말이죠. ) 자극이 가져온 변화에 무심하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고 운동권에게는 사실 특별할 것 없는 시위였으니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촛불이 특별했던 것은 참여하는데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는 것이고 다른 파업이나 시위를 통해 자극받았던 운동가들과는 달리 그런 자극이 없었던 많은 시민들이 갑작스레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이지요.
    겪을 일이 없었을 사람들이 운동을 겪었다.
    특별할게 없어 보이는 이 시위는 모피어스의 '빨간약'을 공중살포한 것이나 다름없는 효과였다는 것.
    이것이 진정한 촛불의 효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dakiller6 2008/09/30 09:17 # 답글

    맞아요. 저 역시 2004년에 있었던 탄핵반대 운동에 대해서 "결국 사전에 '놈현스럽다'라는 단어 하나 추가시킨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잖아~"라고 냉소적으로 봤었습니다.

    그 운동을 통해 대중의식을 급진화되었다는 것을 처음에는 보지 못했던 것이죠. 가시적인 지표로써, 탄핵반대운동은 진보정당의 원내진출이라는 성과 또한 남겼었는데도 말이죠.

    저의 이러한 태도는 촛불국면 초기에 당시 탄핵반대 시위에도 참가했었던 사람들을 만나면서 토론하는 동안 바뀌게 되었습니다. 운동과 관계없이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당시의 탄핵반대를 통해 광장에 처음 나왔었고, 이번에 촛불을 통해 다시 나왔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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